장편 시나리오
유리벽
각본 감독 안태근
기획의도
착하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평범한 주부가 느닷없이 범인이 되어 형무소를 가게 되는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법을 모르고도 살아온 여인이 법 집행의 부당함을 겪게 되는 억울한 통곡 수기『유리벽속의 여인』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무고하게 겪은 실화를 통해 사법개혁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우리 사회에서 없애기 위해 국민 모두가 법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불행한 사랑에 희생되는 여주인공의 삶을 통해 인생의 참의미를 생각게 해준다. 이 영화는 진리와 인간의 생명력을 소재로 한 전 국민이 보아야 할 영화이다.
타이틀의 의미는 감옥을 의미하며 유리벽을 깨고 나올 수는 있지만 상처가 깊다는 상징적인 제목이다.
등장인물
박경숙- 50세, 무고하게 옥살이를 하고 1992년에 사법제자리찾기
모임을 결성했고 1994년에 참여연대를 만들어 활동한다.
김수남 교수- 57세, 그녀의 남편
어린 박경숙- 8세
젊은 박경숙- 23세
젊은 김수남- 30세
이지민- 28세, 경숙의 약혼남
김영찬- 27세, 그녀의 아들, 유학생
김영진- 25세, 아들, 군인
오미란- 24세, 영찬의 애인
김융자- 55세, 서교동 마님
박 사장- 60세, 융자의 남편
한선숙- 50세, 재미교포 사기꾼
윤형동- 55세, 수원공장 사장
윤순임- 65세, 복부인
안왕의- 50세, 서산 땅 임자
이재순- 45세, 안왕의의 부인
박정순- 38세, 김수남의 내연녀
백정수 검사- 32세, 김융자의 사위
향이- 28세, 감방의...
방장- 45세, 일명 돼지엄마, 감방의...
허양희- 35세, 감방의...
김씨 할머니- 70세, 감방의...
박흥철- 35세, 김융자 아들
박미향- 29세, 김융자의 딸
정 변호사- 45세, 박경숙의...
김 과장- 60세, 수원공장의...
박정배 검사- 42세
최 검사- 43세
김 판사- 45세
1부장- 47세, 검찰의
지점장- 43세, 은행의...
여직원- 30세, 은행의...
남직원- 38세, 은행의...
사무장- 32세, 정 변호사의...
여 교도관- 감방의...
최 교도관- 감방의...
윤 교도관- 감방의...
깡패1- 동네의...
깡패2- 동네의...
유치장 남- 48세...
며느리- 25세, 한선숙의...
김 형사- 40세, 시경의...
조 형사- 37세, 시경의...
경찰- 35세, 서초경찰서의...
택시운전사
뱃사공
반포대교의 노신사
외 다수
줄거리
박경숙은 부족할 것 없이 살았던 지리산 자락 갑부집 막내딸이었다. 평범한 학교생활을 마치고 전주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하며 의대생과 첫사랑을 한다. 그들은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약혼까지 하였으나, 애틋한 운명의 시련으로 헤어지는 고통의 아픔을 겪게 된다.
지금의 남편인 김수남 교수와의 결혼으로 엄마가 되면서 이제는 오직 가족과 남편 사랑에 충만해 착하게만 살아야 했던 한국식 어머니가 바로 그녀이다. 그런 그녀가 감옥에 가는 일이 생겼다. 그곳은 자신과 상관없는 곳으로 꿈도 꾸지 못한 곳이었다.
그녀를 파멸로 밀어 넣은 이는 바로 서교동 부잣집 마누라 김융자이다. 그녀와는 절친한 사이였으며, 전주 익산 등 시골에서 꽤 이름 있는 판검사 출신들의 친인척 이었기에 쉽사리 믿음이 오가는 사이로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김융자는 어느 날 집에 찾아와 군에 입대할 아들을 면제 시키어 준다며 2천만 원을 요구했다. 그녀의 말을 의심 없이 믿게 된 경숙은 2천만 원을 그녀에게 건넨 후 유학중인 아들을 신검을 받도록 한국으로 불러들이는데 아들 영찬이 돌아와 이 말을 듣고 빨리 돈을 찾으라고 권유를 하였다.
그러나 그 돈은 되돌려 받았다고 아들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영찬은 자신의 예상대로 방위로 일선 지방에 배정을 받았으니 경숙은 속수무책 당한 것이었다.
또 김융자는 경숙이 투자한 회사가 부도가 나서 경매로 인수한 수원의 알루미늄 공장에 눈독을 올리게 된다. 경숙이 이 공장에 5억 원을 투자하게 된 후 부도가 나자 경숙은 어쩔 수 없이 그 돈을 받기 위해 운명처럼 경매에 가담하여야 했다.
경매에 함께 나서려 했던 경쟁자인 김융자와의 작은 경쟁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원한으로 바뀌어 경숙을 옭아매는 올가미로 변했지만 그 당시는 짐작도 하지 못할 이었다.
김융자는 박경숙의 재산에 탐을 내었고 그녀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마침 한선숙이 경숙과 함께 취득하였다는 서해 조그마한 임야 건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끈질기게 한선숙을 찾아와 온갖 감언이설로 박경숙을 고소하라고 졸라대었다.
그러나 경숙과 함께 계약한 임야는 한선숙은 돈이 없어 빠져버린 상태이며 이미 경숙의 이름으로 취득되어있는 상태이어서 쉽게 응할 수 없었다. 이때 김융자는 검찰총장을 들먹이며 친한 사이이니 구속은 내가 책임질 거니 그 땅을 빼앗으라고 계략을 알려준다. 한선숙은 돈을 마다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돈 한 푼 대지 아니한 땅을 자기 땅이라 우기며 사려고 생각하고 허위고소를 한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이 땅 명의인과 부동산 소개자 경숙 세 사람 모두를 고소한다.
수원 알루미늄 공장은 서해산업이란 회사의 소유 공장이었고 사장은 윤형동이었다. 여고 선배의 소개로 만난 윤 사장은 아주 건실하고 수완도 좋은 사업가로 보였다.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쳐주겠다며 권하는 바람에 그녀는 통장에 있던 돈을 그 회사에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투자한 액수는 억대를 넘게 되었다. 그 돈은 그녀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자가 나오지 않았고 공장은 운영이 부실해져 적자에 허덕이기 시작한다.
1억5천만 원의 투자금을 되찾기 위해 다시 은행돈까지 투자하니 투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3억 원 가까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해물산은 부도가 나 문을 닫는다. 윤형동 사장은 수배를 당하고 도망쳤다가 체포되어 구속된다.
경숙은 단 얼마라도 배상을 받을 수 있다면 빚투성이인 공장이라도 넘겨받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김 씨라는 대리인을 고용하여 경매를 받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부도난 알루미늄 공장은 법원 경매를 통해 소유자는 박경숙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보다 적은 액수가 물려있던 김융자도 자기 앞으로 경매를 받으려고 서로가 대리인을 통해 밀고 당기는 경쟁을 벌인 후의 일이었다.
경숙은 8천만 원을 주위로부터 빌려 8억에 대한 경매비 10%를 지급하였다. 이렇게 서로 공장을 갖겠다는 작은 경쟁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원한으로 바뀌어 경숙을 옭아매는 올가미로 변했지만 그 때까지는 짐작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경숙 앞으로 경매가 낙찰되자 김융자는 1억8천만 원이 안전권 안에 들어있었기에 돈을 받게 될 기대 때문인지 순순히 물러났다.
어느날 경숙은 채권자들과 수원 시내에서 만날 약속을 잡고 그곳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이 때 경찰서 형사의 전화를 받게 된다. 참고인 진술을 해야 하는 사건이라면 생각나는 바 없었다. 그녀가 경찰서의 형사과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낯선 남자 한명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남자를 조사하던 경찰관은 그를 안왕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안왕의라고 불린 남자의 옆에는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윤형동 사장과 땅을 살 때 만났던 사람이다. 안중에도 없던 임야매매 건으로 경찰에 불려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경숙이 서산의 임야를 사게 된 것은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서산 땅을 함께 샀던 한선숙의 얼굴도 떠올랐다. 당시 한선숙은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땅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윤형동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충남 서산 근처에 좋은 땅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그녀와 한선숙 그리고 같이 왔던 윤순임 세 사람은 윤형동 사장의 사무실에서 일단 계약금만 주고 땅을 계약했다.
그리고 한선숙은 미국으로 간다며 전화를 하여 자신은 빠진다고 하여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별 수 없이 그녀는 땅을 구경하러 갔던 윤순임과 둘이서 서산 땅을 사게 됐다. 곧바로 등기도 완료됐다.
천오백 평씩 임야를 취득한지 3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돌아온 한선숙은 난데없이 윤형동에게 속아서 임야를 샀다며 안왕의와 윤형동을 고소한 것이다.
게다가 한선숙이 지금 경숙을 참고인으로 불러들인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무고였다. 본인은 서산의 땅을 사지도 않았으면서 본인이 샀노라고 우기고 있었다. 윤형동과 경숙이 짜고 명의이전을 해주지 않아 윤형동이 팔아주기로 약속한 산꼭대기 너머 2,400평 중 1,200평을 사기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선숙은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박경숙을 추가로 인정 진술하였고 검찰에서는 구속 수사하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경숙이 윤형동 사장과 공모해 한선숙에게 사기를 쳤다며 이른바 사기죄와 함께 공직자를 매수하려고 30만 원을 금품으로 제공했다는 구실로 ‘변호사법 위반’ 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게 됐다.
경찰은 경숙의 ‘혐의 없음’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으나 모두 무시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경숙을 구속수사를 하라는 검찰의 명령이 떨어졌다. 경숙은 김융자와의 당시 정 검찰총장과의 친밀관계 및 총각검사 역시 김융자의 딸과 결혼이야기가 오간다는 사실들이 떠올랐다.
구속 수감된 여 사옥은 경숙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그래도 향이와 말벗을 하고 방장도 그녀를 알고부터는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수감된 지 보름 후 담당 백 검사는 조사마저 불러뽕이라는 작전으로 독방에 가두고 조사를 중단하는 버릇들이기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 모두가 김융자와 한선숙, 그리고 검사가 공모한 것이었다. 결국 꾸며놓은 횡령사기사건으로 경숙은 100일 동안이나 갇혀 있으며 수원공장 대금 4억 원을 고스란히 빼앗겼고, 그들은 허위고소장 마저 임의로 폐기시켜버렸다.
수감생활의 애환은 많았으나 경숙과 안왕의, 윤형동 역시 모두 ‘무죄’ 확정되었다. 그후 경숙은 그들을 무고죄로 고소했으나 2년이 다 되어서야 결국 검사들의 비호 아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무죄 확정 후 민사소송 결과 안왕의에게는 1500만 원의 정신보상금과 빼앗긴 임야 3,000평을, 그리고 경숙에게는 2,000만 원의 보상금 지급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경숙은 몸서리를 쳤다.
경숙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법조문에도 없는 ‘현실적 법’과 자국의 국민을 살해 시키는 이 제도! 내 조국의 법령이 정의로워질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
그 동안 영찬은 검찰청을 오가며 경숙의 진실을 호소하였지만 막상 기소 시킨 검사는 태연한 자세로 법원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경숙의 수원공장을 빼앗은 요준산업의 사모님 김융자는 영찬을 만나 주지도 않았다. 영찬을 더욱 좌절시킨 것은 김융자와 한선숙의 꾐에 넘어간 김 교수가 경숙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김융자와 한선숙은 경숙의 남편까지 찾아다니며 구속된 내역을 알려주며 경숙을 큰 사기꾼으로 몰아 붙였다. 경숙의 가족 모두는 빠른 속도로 벼랑 끝으로 떨어졌고 결국 영찬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찬은 두문불출 외출을 금하고 죄 없는 어머니 한분을 구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과 자책으로 죽음을 생각 하였던 것이다. 그는 결국 어머니에게 죄스러움을 일기장에 남기고 충주호에 몸을 던졌다.
‘사법제자리찾기’ 모임의 초대 회장. 이것이 경숙의 시민단체 활동의 첫 행보였다. 경숙의 억울함이 법으로도 해결되지 못하고 억울하게 감옥까지 다녀오게 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경숙의 사건을 알게 된 사람들은 ‘사법제자리찾기’ 모임을 열면서 경숙에게 초대 회장직을 맡아 달라 부탁해왔다. 경숙은 마땅히 회장직을 수락하고 오늘도 법정으로 간다. 그녀는 무고를 양산하는 법정에 맨몸으로 부딪치며 사법개혁의 의지를 자신의 소명으로 받고 오늘도 매진하고 있다.
시나리오
블랙화면에 자막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1. 명동거리
분주한 서울의 거리. 붐비는 인파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자막: 1993년 서울
많은 이들이 오고 간다. 저마다 행복한 웃음을 띠고 담소하는 사람들. 활기찬 거리이다.
#2. 어느 타워빌딩 스카이라운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유리벽 너머 담소하며 식사를 하는 화목한 김수남 교수의 가족들이 보인다. 박경숙과 아들 영찬, 군인인 영진이다. 부산한 사회와는 격리된 스카이라운지 안이다.
수남: 하하,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구나.
경숙: 영찬이도 곧 미국에 가야하고 영진이도 전방에서 휴가 나왔고 오늘 정말 기쁜 날이다.
수남: 전국에서 모였구나. 아니 전 세계에서 모였다고 해야 하나?
껄껄 웃는데 오랜만의 전 가족 외식이라 모두 기쁜 마음이다.
경숙: 당신도 전주에서 혼자 계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많이 드세요.
수남: 나야 뭐 일 년에 반이 방학인데...
영찬, 영진도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담소를 나눈다.
세상과는 단절된 그곳은 전혀 딴 세상이다. 갇힌 듯 보이나 그 안의 사람들은 거리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식사는 우아하기만 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단란한 모습이 유리벽에 갇힌 듯 보이다가 순간 풍비박산 난다. 깨어지는 유리벽, 경악하는 경숙과 가족들.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F.O)
#3. 감방 (F.I)
좁은 방에 다섯 명의 여인들이 갇혀있다.
경숙이 모진 신고식을 하고 있다.
방장: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취침! 기상! ...
경숙의 헤매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데 방안의 죄수들은 신이 나있다.
여 교도관: (소리) 조용히 해! 그만 하고 재워!
방장, 빙긋 웃으며 다른 이들을 본다.
각자 제자리로 가는 죄수들.
경숙, 벌러덩 나뒹군다.
(DIS)
한곳 경숙이 기대어 앉아있다. 두 뺨을 타고 내라는 눈물!
밖을 보면 검은 하늘이다. 그녀는 진저리를 친다.
떠오르는 김융자, 한선숙, 백정수 그리고 남편 수남.
경숙은 하릴없는 상념으로 고개를 떨군다.
떠오르는 타이틀 유리벽 떴다가 사라진다.
#4. 경숙의 집
넓은 거실이다.
전화를 받고 있는 경숙.
경숙: 네, 시경 수사과요?
#5. 대문 앞
집을 나서는 경숙. 불안한 얼굴이다.
#6. 버스 안
창밖을 바라보는 경숙.
상념에 잠기는데 윤형동 때문일까? 생각해본다.
#7. 공장 (회상)
서해산업이란 회사의 소유 공장인 수원 알루미늄 공장이다.
#8. 사장실
사장인 윤형동이 경숙, 융자와 마주 앉아있다.
형동은 건실하고 수완도 좋은 사업가로 보인다.
여고 선배 융자의 소개로 만난 윤 사장을 만나는 경숙.
형동: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쳐드리겠습니다.
융자: 어머 윤 사장님은 이러다 수원 땅 다 사시는 거 아니예요?
경숙: 먼저 달에도 오천만 원 투자했는데 또요?.
융자: 그럼 아예 억대로 만들어.
경숙: 그런 돈이 어딨어요?
형동: 아 억지로 할 수는 없죠? 신제품 수출이 밀려서 공장을 확장하기 위해 필요해서 말씀드려봤습니다.
융자: 어머 윤 사장님, 돈벼락 맞게 생기셨네.
경숙, 머릿속 계산이 복잡하다.
#9. 커피숍
경숙과 융자가 마주앉았다.
경숙: (심각하다) 아니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일억오천 투자한 게 언젠데 아예 이자도 입금이 안돼요.
융자: (짐짓 모르는 척) 그래? 왜 그렇지? 그럼 모두 3억 투자한 거야?
경숙: (고개를 끄덕인다) 1억5천만 원의 투자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았으니 모두 3억 원이야. 이자도 안 나오는 게 혹시 공장은 운영이 부실해진 거 아닐까요?
융자: 그럴 리가... 공장 확장하고 생산에 바쁘다는 게 엊그제인데...
경숙: 언니도 좀 알아봐줘요.
융자: 그래 알아는 볼게.
경숙, 큰 걱정이다.
#10. 경숙의 집 거실
휴대폰을 받으며 운동을 하다가 벌떡 일어선다.
경숙: 뭐? 서해물산이 부도라고요?
#11. 커피숍
경숙과 융자가 마주 앉았다.
융자: 윤 사장은 수배를 돼 도망쳤다가 체포돼서 구속됐대.
경숙: 나 어쩜 좋아요? 나앉게 생겼어!
융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경숙: 뭔데요?
융자가 빤히 쳐다만 본다.
경숙: 아 뭔데요? 빨리 얘기해봐요.
융자: 서해산업의 투자금을 일부라도 회수하려면 투자해서 회사를 인수하는 거야.
경숙: 뭐라구요?
융자: 우선 8억에 대한 경매비 10%면 8천만 원이 있어야 해.
경숙: 네?
융자: 융자 받어. 나중에 부동산 뛸 텐데...
경숙, 생각이 복잡해진다.
#12. 몽타주
융자의 권유대로 인수를 결정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경숙.
융자의 축하를 받으며 잘 되어가는 데 무슨 일일까?
버스 안, 경숙의 걱정이 커진다.
#13. 경찰서 수사과
복잡한 수사과로 들어서는 경숙이 두리번거린다.
경숙: (지나는 이에게) 김갑동 형사가 어느 분이세요?
손 짓 해주는 곳에는 이미 안왕의와 부인 재순이 불려와 있다.
김 형사와 조 형사, 경숙을 힐끔 쳐다본다.
김 형사: 자, 앉으세요. (다짜고짜) 서산 땅 알죠?
경숙: 네? 그 땅은 윤순임 씨와 내가 둘이 산 땅인데요.
김 형사: 한선숙 씨는요?
경숙: 그 땅은 한선숙과 윤순임 셋이 사려다 한선숙이 빠지고 윤순임하고 저하고 산 땅이예요.
김 형사: 그런데 한선숙 씨가 사기혐의로 자신을 비롯하여 여러 명을 고소했어요.
경숙: (어이없어) 네?
#14. 서산 땅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서산의 어느 곳.
자막: 3년 전
윤형동 사장과 경숙, 한선숙, 윤순임이 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한선숙: 윤 사장님, 경치가 너무 끝내줘요. 미국 같으면 부자동네감이예요.
윤형동: 그렇죠, 이만한 땅 찾기 쉽지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박 여사님.
경숙: 너무 좋아요, 정말 맘에 들어요.
윤형동: 공장 사정만 여유 있으면 굳이 팔 이유가 없는 땅입니다. 윤 여사님은 어떠세요?
윤순임: 저도 이처럼 경치 좋은 땅은 첨예요.
윤형동이 세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15. 윤형동 사장실 (며칠 뒤)
경숙, 한선숙, 윤순임 등 세 사람이 앉아있고 윤 사장이 안영의에게 계약금을 건넨다.
안 사장: (사인을 하며) 자, 계약 끝났습니다. 돈 버신 겁니다.
경숙 등 세 여인 내심 흐믓하다.
#16. 경숙 방
경숙이 통화를 하고 있다.
경숙: 아니 그럼 어떡해요?
한선숙: 갑자기 미국 가게 됐어요. 난 빠질 테니 윤 여사랑 둘이서 사세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어차피 계약금도 난 보탠 것 없으니 아무런 문제없죠.
경숙: 그러네요.
한선숙: 자, 그럼 집 잘 짓고 잘 사세요.
전화가 딸깍 끊기고 경숙, 무슨 일인가 싶다.
#17. 법무소 사무실
경숙과 윤순임이 등기서류를 보고 있다.
법무사: 자, 등기도 완료됐습니다. 각기 임야 천오백 평씩입니다.
#18. 경찰서 (현실)
3년 전 생각에서 벗어난 경숙이 김 형사를 바라본다.
경숙: 이건 무고예요. 한선숙 씨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거나... 본인이 사지도 않은 땅을 샀노라 하면 어떡해요?
김 형사: 글쎄 좀 기다려보세요. 윤형동과 박경숙 씨가 짜고 명의이전을 해주지 않아 윤형동 씨가 팔아주기로 약속한 산 너머 2,400평 중 1,200평을 사기 당했다고 합니다.
경숙: 기가 막혀서 참!
김 형사: 윤형동은 지금 부도를 내고 행방불명이고 한선숙 씨는 이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박경숙 씨를 추가로 인정 진술했습니다. 검찰에서도 구속 수사하라는 통보가 내려왔어요.
경숙: (점점 경악한다) 뭐요? 구속 수사요?
김 형사: 박경숙 씨가 윤형동 사장과 공모해 한선숙 씨에게 사기를 쳤으니 사기죄이고 또 공직자를 매수하려고 30만 원을 금품으로 제공했죠?
경숙: 그건 그게 아니고요...
김 형사: 곧 해명 기회가 있을 겁니다. ‘변호사법 위반’입니다.
이때 한선숙과 윤순임이 들어온다.
경숙: 아니...?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는 게 무슨 일인가 싶다.
의자에 앉아 대질 신문이 시작된다.
선숙: (언성이 높아진다) 당신이 내 땅 사기 쳤잖아?
경숙: 내가 무슨 사기를 쳐?
선숙: 그럼 내 땅 나 모르게 등기했는데 사기가 아니고 뭐야?
고성이 오가는데 김 형사가 호통을 치며 전화를 받는다.
김 형사: 아, 조용히 해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경숙을 쳐다본다.
김 형사: 구속 수사하라는 지십니다.
경숙: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요!
경숙, 눈물이 솟구친다.
코웃음 치며 바라보는 선숙, 윤 여사는 죄지은 얼굴이다.
#19. 유치장
경숙이 들어서는데 유치장 내의 환경이 가관도 아니다.
박 형사: 편하게 있어요!
경숙, 편할 수가 없다.
남성용 철창안의 남자들이 쳐다보며 노골적으로 추파를 보낸다.
남자: (취해서) 야! 야, 안 들려? 저 년이...
#20. 면회실
아들 영찬을 보는 경숙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한다.
영찬: 정 변호사를 만났으니 아무 걱정마세요.
경숙: 너 개학이잖니? 미국 들어가야 할 텐데 나 걱정 말고 가. 어서.
영찬; 아직 괜찮아요.
경숙,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21. 경찰서 수사과
김 형사가 외출했다가 들어온다.
조 형사: 박경숙 씨 건 어떻게 됐어요?
김 형사: 혐의 없음 의견서 검찰에 제출했는데 무시됐어. 게다가 사기죄 및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이 진짜 발부됐어.
#22. 구치소
버스에서 내린 경숙이 포승줄에 묶여 교도전경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간다.
생전 첨 겪는 고난이다. 힘없이 끌려가는 경숙.
그녀에게 또 다른 삶이 펼쳐진다.
그녀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죄수들.
깡패나 조폭, 살인범이나 사기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녀를 적의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끝없이 좌절하는 경숙. 감옥은 그녀로서는 여태껏 생각지 못한 곳이었다.
#23. 미결수 여사동 앞.
경숙: (버럭) 내가 왜?
여 교도관이 가차 없이 몽둥이로 내리친다.
털썩 주저앉는 경숙.
윤 교도관: 여기 들어 온 사람치고 죄지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억울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 여죄수 사동 여러분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기 오게 된 것입니다.
경숙: 내가 무슨 죄를...
생각할 틈도 없이 교도관들이 다시 곤봉을 휘둘러 그녀의 혼을 빼앗아 놓는다.
여 교도관: 넌 인간쓰레기야! 인간 쓰레기!
경숙, 겨우 버티어 낸다.
여 교도관: 옷을 벗어 자기 발 앞에 내려놓는다. 실시!
신입죄수들이 얼른 옷을 벗기 시작한다. 경숙도 검신과정을 겪으며 굴욕감을 느낀다.
겨우 485 숫자가 적힌 수의를 걸치니 눈물이 핑돈다.
젊은 교도관이 그녀 앞에 선다.
최 교도관: 사기 485번!
노골적인 멸시를 한다.
#24. 여사방 복도
복도 끝의 미결수 방이다.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가는 경숙.
사방 안으로 들어간다.
#25. 사방 안
방장이 경숙을 세워놓고 무섭게 다그친다.
방장: 너 뭐하던 년이야?
경숙: (눈 촛점을 잃으며) 박경숙입니다...
방장: 일대기 읊어봐.
경숙,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26. 남원 선거사무소 (26년 전)
부잣집 막내로 꿈같은 여고시절을 보내고 김기남의 선거사무소에서 의대생 이지민을 만나던 아름다운 시절이다.
#27. 냇가
발을 담그고 사랑을 확인하던 그들.
#28. 약혼식
이지민과 약혼식을 올리는 경숙. 인생의 절정기이다.
#29. 사방
경숙, 어찔하며 쓰러져 버린다.
방장, 기가 막히다.
사교성 있게 생긴 향이가 경숙을 부축한다.
#30. 사방 (다음날 아침)
경숙을 둘러싸고 앉은 방 식구들.
할머니 김씨가 코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김씨: 난 화투판에서 망보다가 들어왔당게. 나도 죄가 없지라. 그저 ‘치아라(치워라)!’ 한 죄 뿐이여.
자신의 무고함을 힘주어 주장한다.
#31. 운동장
한 켠에서 경숙이 관련자들의 이름을 수없이 썼다 지운다.
한선숙, 윤순임, 윤형동, 안왕의...
경숙: ...!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나 알 수가 없다.
#32. 검찰청 (며칠 후)
호송버스에서 내리는 경숙.
#33. 406호 백정수 검사실
방으로 들어오는 경숙. 뜻밖의 인물이 앉아있다.
바로 김융자가 한선숙과 함께였다.
경숙: 아니 김 여사님...?
융자가 백 검사에게 친분을 과시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한다.
융자: 백 검사님~~ 시간 좀 있어?
담배를 꺼내들고 들이댄다.
백 검사: 아, 여긴 금연입니다.
금방 표정을 바꿔 경숙을 쳐다본다.
백 검사: 박경숙 씨, 당신 김융자 씨 돈 1억8천만 원을 떼먹었다며?
경숙: 네?
그제야 모든 것이 정리된다.
경숙: 그런 증거를 보여주세요.
백 검사: (묵살한다.)뭐요?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했구만!
경숙: 이 나라에는 법도 없습니까? 당신 이 나라 검찰 정말 맞아요?
보고 있던 융자가 거든다.
융자: 아니 이 여자가 여기가 어디라구 함부로 나불거려?
경숙: 당신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당신한테 해 끼친 게 있어?
융자, 벌떡 일어서며 손찌검을 할 태세이다. 경숙도 밀릴 수 없다.
경숙: 왜 한번 해볼텨!
백 검사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34. 징벌방
어둔 방에 갇힌 경숙, 공포에 휩싸인다.
경숙: 이 무슨...
꿈을 꾸는 듯한 경숙. 아들 영찬과 남편 김 교수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보인다.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35. 여관방 (회상)
지금의 남편 김수남 교수를 만나 강제로 겁탈 당하는 경숙.
수남: (야수 같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른 남자에게 양보할 순 없어!
경숙: 이러면 저 죽어요...
몸부림치며 그저 눈물만 흘린다.
그리고 약혼 파혼 후 결혼에 이르기 까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36. 호송차 안
차에 실려 밖을 보는 경숙. 차라리 홀가분한 얼굴이다.
남편 김 교수와 아들 영찬을 떠올린다. 유리벽 레스토랑에서의 즐거운 한 때도 떠오른다.
경숙, 스스로를 다독인다.
#37. 사방
돌아온 그녀를 둘러싸고 앉은 동료들.
경숙: 난 꼭 살아서 억울한 이 사실을 밝혀낼 거야!
자신의 각오를 설파한다.
향이: 언니, 불러뽕 당하고 왔구나? 그곳이 바로 징벌방이야. 콩밥먹이고 불러다 놓고 방귀나 뽕 뀌라는 거야.
경숙, 그곳이 무슨 방이든 이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임을 되새긴다.
융자의 악마 같은 웃음에 치를 떠는 경숙.
#38. 감옥의 하루 (몽타주)
감옥의 하루는 밖보다 길다.
경숙은 건강을 위해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한다.
밥도 주는 대로 많이 먹는다.
#39. 사방
경숙을 가운데 두고 모두 둘러앉았다.
향이: 한선숙과 김융자가 한 편이 된 거예요. 한선숙이 김융자를 끌어들인 거죠.
동료들도 모여 들으며 수긍을 한다.
향이: 백 검사는 김융자에게 뭘 받아 처먹었을 거예요. 내 말 틀려요?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향이: 백 검사는 제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
방장: 뻔하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정당한 판단을 할 수 없을 거야.
결론을 내린다.
경숙, 융자와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40. 결혼식 (이하 회상)
경숙과 김수남과의 결혼식이 화려하다.
하객으로 참석한 김융자, 다른 하객과 목례를 나눈다.
웨딩마치에 따라 퇴장하는 두 사람.
#41. 서교동, 융자네 안방 (몇 년 후)
귀부인 티를 내며 경숙과 마주한 융자.
온갖 수집품으로 가득한 안방에는 뜯지도 않은 상품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다. 융자가 인심을 쓰는 척 작은 상자 하나를 뜯어 경숙에게 선물한다.
경숙에게 이것저것 보여주며 발모제를 설명한다. 딸 미향은 옆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한다.
미향: 이 905 발모제는 발랐다 하면 거짓말처럼 털이 나요.
경숙: 난 쓸 일 없는데...
융자: 어머,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관리를 해줘야 해. 아님 대머리되는 건 순간이야.
경숙, 마지못해 발모제를 받아들고 사용법을 살핀다.
그런 경숙 앞에 한 박스를 들이미는 융자.
#42. 융자네 안방 (몇 년 후)
오늘도 마주 앉은 경숙과 융자. 미향, 차를 가져와 동석한다.
융자: 영찬이 병역 건, 아무 걱정 마. 요새 누가 자식을 군대 보내니?
경숙, 눈이 동그래져 본다.
융자: 내가 알아서 해결해줄게. 이천만 원만 준비해.
경숙: 그럼...?
융자: 내가 누구니?
미향: 영부인하고 친구세요!
융자, 화사하게 웃어 보인다. 타고난 사기꾼이다.
#43. 서교동, 융자네 안방 (몇 달 후)
경숙이 다소 흥분해 융자와 마주 앉았다.
경숙: 아니, 누굴 준건데 영장이 나왔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융자: 아 글쎄, 그날따라 그 분이 결근했다잖니? 아이 참...
경숙; 돌려줘요 내 돈!
융자: 아니 뭔 소리야, 이미 썼지. 아니, 그분 드렸지...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경숙, 눈에 불꽃이 튄다.
#44. 서교동, 융자네 안방 (몇 달 후)
오늘도 마주앉았다.
융자, 돈 일부를 내민다.
융자: 자 이것뿐이야. 그분도 이미 썼대. 영찬이 동생 때에는 잘 될 거야. 영진이라고 했나?
경숙, 기가 막히다.
#45. 서교동, 융자네 안방 (몇 달 후)
또 마주앉았다.
융자: 급해서 그러는데 이천만 원만 빌려줘.
경숙: 오라고 한 게 그 때문이에요?
경숙, 딴 데만 쳐다본다. 그런 경숙에게 매달리는 융자.
융자: 아 내가 언제 돈 떼먹는 거 봤어? 담 주면 나와. 내가 바로 갚을 거니까 날 믿고 빌려줘. 부탁해.
경숙: ....
융자: 저번에 돌려받은 돈 천만 원 빌려줘.
경숙: (질색을 한다) 언니!!
융자: (반색을 하며) 얘, 내가 오죽하면 그러겠니...
경숙, 착찹해 한 숨만 내쉰다.
#46. 서교동, 융자네 안방 (몇 달 후)
오늘도 빌려준 돈 때문에 싸우는 중이다.
경숙: 언니가 하도 그래서 믿고 빌려줬는데 정말 이러기유?
융자: 내가 거짓말 하니? 돈이 거짓말하는 거지. 며칠만 기다려줘.
경숙: 그 말이 지금 믿기겠수. 벌써 몇 달인데...
융자: 내가 죽일 년이지! 어쩌다 네 돈을 빌려서 내가 이 신세가 되었니?
경숙, 또 한숨만 내쉰다.
#47. 서교동, 융자네 안방 (몇 달 후)
돈 일부를 갚는 융자.
경숙은 울며 겨자 먹기이다.
융자: (또 죽을 상이다) 근데 서해산업 부도래.
경숙: 뭐요?
융자: 알루미늄 공장 부도라니깐! 윤형동 그 작자 행방불명이야! 암만해도 외국으로 튄 거 같애.
경숙, 정신이 혼미해진다.
#48. 경숙의 안방
겨우 정신을 추스르는 경숙, 벽에 붙어있는 작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경숙: 내가 사기당할 관상인가?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융자의 이빨에 덮치는 환상까지 떠오른다. 그 뒤로 윤형동이 웃고 서있다.
#49. 서교동, 융자네 안방 (회상)
오늘 따라 거울 앞에서 귀부인 티를 내며 한껏 뽐낸다. 그런 융자를 부럽게 쳐다보는 경숙이다.
미향이 옆에 앉아있다.
융자: 강남 개발 때 한몫 잡았어. 영부인하고도 땅 보러 다녔어. 중요한 건 정보야.
경숙: 진짜유? 그말? 영부인하고...?
융자: 내가 누구니? 내가 한창 때에는 샀다 하면 따따블이야. 나 따라다니는 아줌마 부대가 한 트럭이야.
자기 치부 자랑을 마치자 미향이 신약 한 통을 꺼내준다.
융자: (받아들고) 이 약은 모르면 손해야. 주근깨, 버짐, 여드름 안 듣는 피부병이 없어.
경숙: ...
융자, 한 병도 아니고 박스 채로 들이민다.
#50. 어느 식당
경숙과 융자네 두 집 부부들끼리 식사자리가 마련되었다.
박 사장: 난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섭니다. 천천히 들고 가세요.
융자의 남편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다.
융자: 뭐, 큰 걱정 아니네. 이천만 원만 있으면 해결돼. 내가 아는 이가...
경숙에게 귓속말로 비밀 이야기처럼 속삭인다.
김 교수, 모르는 척 음식만 먹고 있다.
#51. 호텔 입구 (며칠 후)
경숙이 융자와 만나 돈을 건네고 헤어진다.
융자: 아무 걱정 마. 이번엔 나만 믿으라구.
바람같이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불안해 쳐다보는 경숙.
#52. 경숙의 집 거실
그것을 알고 영진이 경숙을 답답한 듯 쳐다본다.
영진: 엄마, 왜 그래요? 제발 좀 그냥 계세요.
경숙: 이번에는 잘 될 거야. 나 좋으려구 이러니?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건데 엄마 속도 모르고...
영진: (버럭) 엄마, 제발 좀 그만해요!
#53. 융자네 안방
경숙이 융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경숙: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영진이가 난리를 쳐서...
융자: 무슨 소리야. 벌써 다 돌려서 돌려줄 수가 없어...
경숙: 오죽하면 왔겠어요. 제발 좀...
융자: 아, 좋자고 한 일인데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지. 돈을 준 쪽이나 받은 사람들이나 모두 같이 구속되는 거니까.
경숙, 난감하다.
#54. 사방
경숙의 말을 듣고 있는 동료들.
경숙: 사기를 당하면 내가 당한 거예요. 그리고 천만 원을 더 빌려가서 갚지도 않았다구요.
동료들, 딱하다고 쳐다본다.
경숙: 근데 자기 돈 1억8천만 원을 내가 마음대로 빼서 썼다구?
향이가 울 듯한 얼굴로 듣고 있다.
경숙: 그러고는 나를 무고하게 감옥으로 보냈어요.
너무도 분하다.
그러나 듣는 표정은 각기 다 다르다.
#55. 면회실
경숙이 김 교수와 영찬을 면회하고 있다.
영찬: 그 아줌마들을 만났어요.
경숙: 뭣하러?
날카로워진다.
#56. 커피숍 (회상)
한선숙과 김융자를 만나는 김 교수와 영찬.
커피숍의 손님들이 모두 쳐다보는데 망신당하는 꼴이다.
선숙: 우리가 본 손해가 얼마인데 선처 운운해요? 배짱 한 번 좋네요.
김 교수: 그럼 얼마나?
선숙: (융자를 보더니) 2억은 줘야죠. 사정을 봐줘서.
융자: 그리고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인데 윤형동이 하고 거의 붙어 다니며 우리를 상대로 사기를 친 거예요. 아직도 뭔 말씀인지 모르시겠어요?
김 교수와 경찬, 어이없어 한다.
#57. 집 거실
김 교수가 술만 마시다가 영찬에게 화풀이를 한다.
김 교수: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니?
경찬: 엄만 그럴 분이 아니예요. 지금 무고하게 봉변당한 거라구요!
김 교수: 너두 참! 그 여자들이 공연히 그런다고 생각하는 거야?
경찬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서 할 말이 없다.
#58. 면회실
김 교수가 경숙에게 합의를 종용한다.
김 교수: 합의해주는 게 어때?
경숙: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린다.
김 교수: 이 나라 검찰이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가뒀겠어?
경숙: 지금 날 믿지 못하는 거예요?
경찬도 속상하다. 김 교수는 아예 돌아서 앉는다.
#59. 사방
경숙이 차디찬 사방에 누워 스피커에서 나오는 장욱조의 <고목나무> 노랠 듣고 있다.
경숙의 뺨 위로 자기도 모르게 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노래: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 빛 아래 외롭네. 옛 사람 간 곳 없다. 올 리도 없지만은 만날 날 기다리며 오늘이 또 간다...
향이는 옆에 앉아 세면 타올의 실을 뽑아 손뜨개질을 하고 있다.
울고 있는 경숙, 돌아눕는다.
향이가 앙증맞은 머리핀을 만들어 내민다. 그리고 경숙의 머리단장을 해준다.
향이는 타다 남은 성냥개비로 자신의 눈썹을 그린다.
경숙은 정성들여 화장하는 향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경숙: 그래, 지금은 감옥 안이지만 난 꼭 나가서 복수를 할 거야.
향이: 암요. 그래야지요.
그런 향이를 보며 경숙도 웃음을 짓는다.
#60. 면회실 (두 달 후)
경숙이 정 변호사와 면회를 하고 있다.
정 변호사: 분명히 이길 겁니다.
경숙은 그 말에 다시 각오를 다진다.
#61. 사방 (밤)
집시법 위반으로 들어온 시위학생들이 숟가락을 두들기며 집단구호를 외친다.
학생들: 독재 타도! 민주 쟁취!!
경숙도 그들 따라 주먹 쥐고 장단을 맞춘다.
서서히 강인해지며 의식화 된다.
최 교도관이 다가와 곤봉으로 철문을 친다.
최 교도관: 485번, 너 뭐하는 거야! 니가 뭔데 박수를 쳐!
향이: (얼른 나선다.) 죄송합니다. 언니 안칠 거지?
경숙이 고갤 숙이고 향이가 조아린다.
돌아서 가는 최 교도관.
향이와 경숙이 마주보더니 씩 웃는다.
#62. 면회실
영찬과 면회하는 경숙.
경숙: 네가 아버지한테 전화 드려보지 그랬어?
영찬은 억지 미소를 보이나 사태는 짐작할 만하다.
경숙: 그리고 수원공장에 좀 다녀와. 공장 사겠다는 최 사장에게 팔았으면 하는데 김 과장을 만나 물어봐.
영찬: 네.
#63. 사방
경숙이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선다.
김융자가 떠올라 몸서리를 친다.
향이: (놀라) 왜 그러세요?
경숙: 내가 공장 중도금 날짜를 넘겨서 예감이 너무 안 좋아.
향이: 김융자가 가만 있을 리 없어...
사방안의 사람들 모두 궁금해 한다.
경숙: 그럼 이 모든 계략이...?
생각이 미치자 지금의 상황이 정리된다.
향이는 더욱 궁금해 하는데 방사람 모두 안쓰러운 얼굴이다.
방장: 강탈 당했구만.
결론을 내린다.
#64. 사방 (며칠 뒤)
향이가 출소하는 날이다.
책을 읽고 있는 경숙에게 다가오는 향이.
향이: 언니 나 오늘 출소해요.
경숙: 좋겠다, 정말...
향이: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을까요?
경숙: 그게 무슨 소리야?”
향이: 남편이 아이를 걱정해 간통을 용서해 주기로 했어요.
경숙: 그래서 고소를 취하해 풀려나는 것이잖아.
향이: 그런데 아직도 그 사람 잊을 수 없어요.
경숙: 그 대학원생?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려.
향이: (눈물이 비친다) 잊혀지지 않아요.
경숙: 그래도 잊어. 그 남자 잊어, 원래 그런 거야.
향이: 언니라면 그럴 수 있어요?
경숙: 그 남자, 향이를 찾아오지도 않았잖아.
문득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자신의 남편인 김 교수도 그렇다.
향이: 그래도 나가면 만나보고 싶어요.
#65. 사방 (오후)
향이가 나가고 드세어 보이는 신입이 들어온다.
사방 사람들 쳐다만 보고 있다. 신입 허양희가 정돈된 경숙의 관물대를 본다.
허양희: 여기 슈퍼마켓 주인이 누구예요?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관물대의 군것질거리를 먹어치운다.
기가 막힌 경숙.
양희: 씨벌 놈들, 잘 먹고 잘 처먹어라!!
온갖 쌍소리를 해대기 시작한다.
경숙이 참지 못하는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있다.
양희: 그런 개 쌍놈들은 안 잡아가고 왜 나만 잡아! 억울해!!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 당신도 울고 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 찻잔에 어리는 추억을 보며 당신도 울고 있네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을 그 누가 알았던가요. 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 듯이 당신도 울고 있네요...
억울한 사연은 다 똑 같다.
노래 가사에 더욱 속 터지는 양희,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방장: 아 조용 못해!! 여기 억울하지 않은 년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시끄러워, 잠이나 처자!!
양희, 울음을 뚝 그친다.
양희: 야, 니가 뭔데 지랄이야! 지랄이!! 니가 내 속 터지는 걸 알아!!
방장, 본때있게 발길질을 날린다.
양희: 어이쿠, 이년이 사람 잡네! 그래 잘 만났다. 너 죽고 나 죽자!!
또 발길질에 나가떨어진다.
최 교도관이 뛰어오고 분을 삭이지 못한 양희는 소란을 피우다 결국 끌려 나간다.
#66. 사방 (아침)
양희가 헛깨비처럼 방으로 들어온다.
쳐다보는 방 사람들.
양희, 경숙 옆의 마루에 누워 숨죽여 흐느낀다.
경숙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만져준다.
경숙: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67. 사방 (며칠 후)
조금 진정된 허양희가 노래를 부르고 경숙도 노래를 부른다.
합창: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감방은 어느 순간 합창으로 하나가 된다.
양희: 언니 진짜 잘 한다. 이제부턴 패티 언니로 부를게요.
경숙: 좋을 대로...
#68. 사방
아침마다 찬송가가 불리우고 기도와 함께 방언까지 온 감방 안에 울려 퍼진다.
경숙도 그 중 한 명이다.
합창: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마음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방장: (냅다) 에라이 씨벌!
소리 지르곤 더 큰 소리로 찬송가를 따라 부른다.
합창: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여교도관들이 지나가며 쳐다본다.
경숙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희도 따라 찬송가를 따라 부른다.
합창: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경숙의 아픔이 잠시나마 치유된다.
#69. 수원 공장
김 과장을 만난 영찬.
융자가 어느덧 공장의 주인이 되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영찬을 보는 융자, 코웃음을 친다.
융자: 웬일이니?
영찬, 자초지종을 생각할 겨를 없이 감옥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또다시 용서를 구한다.
영찬: 김 여사님,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융자: 어머, 애가 왜 이래? 김 과장 얘 내쫓아요!
영찬, 융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는다.
융자는 영찬을 매몰차게 박차고 차를 타고 가버린다.
#70. 포장마차
영찬과 김 과장이 술잔을 기울인다.
김 과장: 그렇게 공장을 접수하게 된 거요.
영찬, 자신의 무능함을 새삼 느낀다.
영찬: 죄 없는 우리 어머니를 감방으로 보내기 위한 모략이군요.
김 과장, 묵묵부답이다.
영찬: 결국 김융자가 공장을 뺐으려고 한선숙을 시켜 고소하게 하여 어머니를 감옥에 보낸 것이군요. 그러곤 공장을 인수하고...
그렇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71. 반포대교
다리를 걷는 영찬은 물끄러미 난간에서 강물을 쳐다본다. 그리고 절로 울음이 나온다.
영찬, 뛰어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때 중년신사가 팔을 잡았다.
노 신사: 젊은이, 세상은 살아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네.
영찬: (정신이 든다.)네.
노 신사: 힘 내시오. 젊은 이.
영찬: 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노 신사도 영찬이 가자 가던 길을 간다.
#72. 수사과
영찬이 김 형사를 만난다.
김 형사: 윤형동이 도주한 이상 사건 해결의 방법은 한 가지요.
설명을 듣고 있는 영찬.
김 형사: 공범으로 몰린 안왕의의 부인을 만나 수표 지불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오.
영찬: 알겠습니다.
#73. OO은행 창동 지점
창구에 매달린 경찬과 안왕의 부인 재순이 애가 타 얘기하나 여직원은 아랑곳 않는다.
여직원: 아 글쎄 그건 안되요.
영찬: 어머니가 이 일로 무고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제발 좀 알아봐 주세요.
뒤에 앉았던 남직원이 다가온다.
남직원은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남직원: 도와드리고 싶은데 은행 내규 상 힘듭니다.
좌절하는 영찬과 재순.
#74. 골목길
가로등이 들어온 늦저녁이다.
힘없이 걸어오는 영찬, 세상이 원망스럽다.
#75. 다른 골목길
걸어오는 영찬. 위기에 처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두 청년 사이에서 위기에 빠진 미니스커트 여성이 도움을 청한다.
미란: 내가 뭘 잘못했어요? 그냥 보내주세요 제발!
영찬이 겁 없이 두 남자 앞으로 간다.
영찬: 지금 뭐하는 겁니까?
남A: 뭐야? 야, 가던 길 가.
남B: 자식이!
영찬을 냅다 차버린다. 영찬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순간 미란이 몽둥이를 구해 두 남자를 향해 휘두른다.
남B: 어쭈!
사람들이 오며 두 남자가 피한다.
남A: 너 걸리면 죽는다.
도망치듯 가버리는 두 남자.
미란: 겁도 없이 왜 덤벼. 난 또 한가락 한다구... 고마웠어.
영찬: 경찰서에 신고해야죠.
미란: 경찰에 신고해봤자 우리 편 들어줄 거 같애. 다 한 패들이라구!
영찬도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미란: 앓느니 죽지. 이젠 가도 돼. 고마웠어.
#76. 다른 거리
영찬이 걱정되어 그녀를 쫓아온다.
미란이 돌아서서 영찬을 쳐다본다.
미란: 어디까지 쫓아올 건데?
영찬: 차타는 거 보려고...요.
미란, 귀엽다는 듯이 웃는다.
미란: 알았어, 따라와.
인근의 생맥주집으로 들어간다.
#77. 생맥주집
마주 앉은 두 사람.
미란: 내 이름은 미란이야, 오미란!
영찬, 그녀가 생각보다는 착한 여자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영찬: 어 내 이름은 김영찬. 아까는 왜...?
미란: 술집에 알바 갔다가 하도 귀찮게 해서 도망친 거야. 신경 쓸 거 없어. 자 원샷!
기세 좋게 쭉 마신다.
영찬은 조금 마시다가 내려놓는다.
#78. 거리 (밤)
영찬이 취한 미란을 부축하고 간다.
토하려는 미란을 길 가 한 구석에 앉히는 영찬.
아까 두 남자가 다가온다.
가까이 와서 보니 다른 남자들이다.
영찬, 하는 수 없이 미란을 들쳐 업는다.
인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닌 그저 그런 상황이다.
#79. 집, 영찬의 방
취할 대로 취해 쓰러져 잠든 미란. 영찬이 이불을 덮어주고 나간다.
#80. 현금 인출기 코너
영찬이 돈을 빼서 나온다.
#81. 고속버스터미널
영찬이 전주행 버스에 오른다.
#82. 아파트 단지
걸어오는 영찬.
#83. 아파트
불을 켜는 영찬, 방문을 열어본다.
아파트에 아버지 김 교수는 없다.
영찬, 되는대로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든다.
누군가 불을 켜 눈을 떴는데 웬 여인(박정순)이 반라의 상태로 놀라 쳐다보고 있다.
정순; 누구야? 자기야!
영찬, 보니 그녀 곁에 아버지가 서있다.
영찬, 무슨 상황인가 의아스럽다.
김 교수: ...
어색한 침묵 후 정순이 옷을 입고 나온다.
정순: 나 마실 것 좀 사올게요.
김 교수: 웬일이냐?
영찬: 어머니 일 때문에 상의 드리려고 왔어요. 근데 그냥 갈게요.
김 교수: ...
영찬이 아파트를 나가려자 김 교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
영찬: 아뇨, 괜찮아요.
아파트를 나선다.
#84. 아파트 단지
영찬이 내려가는데 정순이 뭔가를 사서 올라오고 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두 사람.
영찬, 허우적거리며 그곳을 빠져나간다.
#85. 대합실
영찬이 미란을 떠올린다.
#86. 버스 안
잠이 든 영찬, 쓸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단란한 한 가정이 완전히 해체되어가는 수순이다.
#87. 거리 (새벽)
버스에서 내리는 영찬, 어느덧 어둠이 걷혀간다.
#88. 집 (아침)
들어오는 영찬.
#89. 영찬의 방
미란은 이미 가고 없다. 영찬, 미란이 남긴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90. 사방 (아침)
경숙이 부러진 칫솔로 표시를 하고 있다.
양희: 언니, 그게 뭐유?
경숙: 여기 들어온 지 75일 됐어.
양희: 햐~ 75일?
경숙: 첨에는 뻔질나게 불러대더니 요즘은 조용해.
방장이 거든다.
방장: 뻔하지. 까치방 검사들이 다 그런 게야. 패티 언니가 유죄였다면 진작에 끌어내다가 더 혼내고 따졌을 거야. 그런데 들자니 무겁구 놓자니 깨지겠구 그런 게지.
양희: 햐! 빠삭하네.
방장: 나도 여기를 안방 드나들 듯이 했다. 도박죄로...
양희: 죄를 짓긴 했네요.
방장: 도박이 뭔 죄야? 남의 돈 사기 치는 것보다 ‘잃어도 좋고 따도 좋다’라는 약속으로 하는 거 아니야? 뭐가 죄라는 거야?
경숙: 나 같은 경우보다야 확실한 죄지.
방장: 패티 언니는 죄가 무거우면 아마 3년 6개월 정도 구형하겠지. 그냥 모르는 척 처박아 두는 거라구.
경숙: ...
방장: 검찰의 권위 때문에 생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야.
#91. 카페
차를 마시는 영찬과 미란.
다른 사람들은 담소를 나누는데 침울하기만 하다.
#92. 면회실
경숙이 정 변호사와 마주 앉았다.
정변: 사법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국가권력은 언제나 정당해야 하는데 작은 실수 하나라도 검사한테는 치명적이지요. 잘못을 시인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경숙: (새삼스럽게 와 닿는 말이다.) 그럼 오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정변: 두고 봐야죠. 내일이 2차 공판입니다.
#93. 법원 밖
호송차가 마당에 들어선다.
#94. 법정
영찬과 미란이 방청석에 앉아 있다. 김 교수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는 융자와 딸 미향, 한선숙과 며느리가 앉아서 노려보고 있다.
백 검사: 피고 박경숙에게 3년 6개월을 구형합니다.
경숙, 현기증이 나는 듯 몸을 주체 못한다.
안타까운 영찬과 미란.
#95. 사방
경숙이 심한 몸살을 앓는다.
현기증에 몸을 세울 수조차 없어 누워 있다.
#96. 면회실
영찬과 미란이가 왔다.
눈에 띄게 수척해진 경숙.
미란: 어머니, 힘 내세요.
영찬: 네, 이길 수 있어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경숙, 그저 기특하기만 아들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앞선다.
#97. 교도소 밖
나오는 영찬과 미란.
그때 전화를 받는다.
영찬: (얼굴이 환해진다) 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뵙죠.
미란: 오빠, 뭐야?
영찬: 응, 안왕의 씨 부인인데 그 수표를 찾을 수 있대. 은행에서 만나기로 했어. 지금 가자.
급한 나머지 잡아끈다.
#98. OO은행 창동 지점.
들어오는 두 사람. 재순이 기다리다가 일어나 손짓한다.
#99. 지점장실
지점장이 영찬 일행 앞에서 담당 남직원을 불러 혼을 내준다.
지점장: 지금 사람 목숨이 오가는 상황인데 언제까지 원리원칙만 따질 겐가?
당장 수표 원장 마이크로 필름에서 문제의 수표를 찾아내게.
남 직원: 네,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간다.
지점장: 이제 찾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죠?
안심을 시켜준다.
재순과 마주보는 영찬도 안심이 된다.
영찬: (미란에게) 이제 그 수표 번호를 변호사에게 제출하면 엄마가 무죄 입증이 되는 거야. 감옥을 벗어날 수 있어.
미란도 기뻐한다.
#100. 법정
재판이 재개되고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영찬, 미란, 재순 등 모처럼 환한 얼굴이다.
판사: 3차 공판에서 검사 측 불출석 증인 출석시키도록 하세요.
한선숙: 다른 증인도 찾아보겠습니다. 억울합니다. 판사님.
소리 높여 절규를 한다.
판사: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는데 그만 하세요.
한선숙, 그 자리에서 졸도한다.
경숙은 정의의 승리를 실감한다.
#101. 사방
경숙이 어려운 법전을 놓고 공부하고 있다.
양희가 공부에 열중인 경숙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양희: 언니 그러다 법학대학원가겠다.
경숙: 법에 대해 알아야 해. 우리 같은 피해자는 없어야 돼.
방장: 애국 시민 나셨네.
돌아서 잠을 청한다.
경숙, 각오를 다진다.
#102. 카페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즐거운 기분이다.
영찬: 결국 진실이 밝혀졌어.
미란: 어머님, 천만다행이셔.
영찬: 아직 3차 공판이 남았어. 위증했던 윤순임 씨가 이번에도 불출석하면 강제 구인될 거야.
#103. 법정
공판에 윤순임이 강제구인 되어 출석했다.
윤순임: (생땀을 흘리며) 저는 거짓말 한 적이 없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정변: 그럼 이 수표를 인정 못하시겠다는 것인가요?
백 검사: 판사님, 변호사는 지금 증인에게 억지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김 판사: (무시하고) 변론 계속하세요.
경숙이 백 검사를 향해 일갈한다.
경숙: 검사님, 검사님이 양심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법은 엉망이 될 것입니다.
백 검사: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직 재판이 끝난 게 아니예요, 피고.
김 판사: 검사 앉으세요!
흥분한 검사를 저지한다.
경숙: 검사님,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에 대해 따져볼까요? 사기꾼을 옹호하고 동조하는 검찰이 있는 한 국가의 장래는 물론 사법이 부재한 이 나라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 검사,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변한다.
#104. 사방
경숙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한다.
경숙: 난 앞으로 법이란 이름 아래 어처구니없이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늦었지만 계속 공부해서 그들을 위해 앞장설 거야.
양희: 그럼, 진짜 법학대학원 가는 거야?
경숙: 아니, 꼭 대학원을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출소 후 그녀의 목표는 정해졌다.
#105. 법정
선고공판일, 경숙과 한선숙은 김 판사 앞에 나란히 섰다.
방청석의 사람들이 김 판사의 판결문 낭독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 판사: 배상신청인 한선숙의 배상신청을 기각한다. 이 사건의 사기혐의 및 변호사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 박경숙은 각 무죄이다.
판결문 낭독이 끝나자 영찬과 미란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경숙은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106. 청계천 중고시장
자유의 몸이 된 경숙과 영찬이 활기차게 걸어간다.
#107. 어느 가게
경숙이 녹음기를 구입한다.
#108. 백정수 검사실
영찬과 경숙이 백 검사와 마주 앉았다.
녹음을 하고 있다.
경숙: 한선숙과 김융자의 무고죄에 대해 고소할 겁니다.
백 검사: 한선숙 씨는 몰라도 김융자 씨는 박경숙 씨를 고소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경숙: 뭐예요?
미칠 노릇이다. 경숙, 찬찬히 기억을 떠올리며 따진다.
경숙: 내가 처음 검사실에 불려오던 날 기억하시죠? 이 방에 한선숙과 김융자, 그리고 검사님 세 분이 있었습니다. 그때 검사님께서 김융자의 고소장이라며 내게 보여주고 1억8천만 원을 갈취한 사기범이라고 호통을 쳤잖아요? 그 고소장 다시 보여주시죠.
백 검사: (비웃으며) 그건 있다고 해도 업무상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고소장은 이미 폐기했다고요. 아시겠어요?
경숙: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사기꾼이라면서요? 김융자 돈 1억8천만 원을 차용증도 없이 집어다 쓴 사기꾼이라고 했잖아요?
백 검사: 박경숙 씨가 뭔가를 오해하시거나 착각하신 거 같은데 잘 들어 보세요. 그날은 김융자 씨가 의혹을 제기해서 자필로 진정서를 써왔기 때문에 확인 차원에서 박경숙 씨에게 물어본 것일 뿐입니다.
경숙: 확인 차원이라구요!
백 검사: 예, 그래서 물어본 건데 박경숙 씨가 아주 강하게 부인하는 걸 보고 혐의가 없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 김융자 씨의 진정서는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에 폐기처분을 했어요. 무슨 소린지 알아 들으셨어요?
경숙: 거짓말도 유분수지, 폐기를 해? 뭘 폐기했다는 거예요! 누구 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 두 여자의 말만 믿고 그 여자들 편에 서서 날 사기꾼으로 몰아 세웠으면서 뭐예요? 혐의가 없는 거 같아서 폐기처분 했다구요?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거예요?
백 검사: 지금 뭐하는 거요? 검찰청에 와서 검사한테 공갈 협박하는 겁니까?
영찬, 흥분한 경숙을 붙잡는다.
경숙: 어쨌든 진실을 밝혀주세요.
백 검사: 이봐요, 박경숙 씨 아직 재판이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아셔야 돼요. 항소할 거라고요.
경숙도 백 검사를 노려본다.
#109. 검사실 앞
경숙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검사실을 나온다.
구경꾼들이 몰려 있다.
#110. 경숙의 방
경숙의 손을 잡은 영찬이 하소연한다.
영찬: 엄마! 나도 엄마처럼 아무 죄도 없으면서 잡혀가 그런 고초를 겪었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해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며 이를 갈았을 거예요.
경숙: (반갑지 않은 말이다) 그래서...
영찬: 억울한 건 꼭 밝혀야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하는 복수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엄마가 감옥에 가신 후 집안은 풍비박산 났어요.
이젠 집안부터 돌보시고 앞으로의 생각을 하실 때 라구요. 복수에 매달리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경숙: 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는 걸 어떡하니? 백 검사가 하는 걸 봐라! 날 속였잖아? 김융자의 고소장이라고 보여주던 종이쪽이 뭐? 고소장이 아니라 진정서였다구?
영찬: 어머니, 참으세요!
경숙: 아니 어떻게 참니?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구. 권력 좀 있다구 약자에게 돌 던져 중상을 입히고 나 그런 적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어. 그렇게 당했는데 참아? 죽을 땐 죽을망정 싸워야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구.
경숙, 막무가내이다.
영찬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
#111. 한강변
영찬이 미란과 산책을 하고 있다.
미란: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맞기는 해. 정의는 이긴다. 우리 어머니 파이팅이야.
영찬: 아직 끝난 건 아니야. 검찰의 항소가 있을 거야.
미란: 그래봤자 또 패소할 텐데 뭘 걱정해.
영찬은 말을 줄이는데 미란은 즐겁기만 하다.
#112. 경숙의 집
들어오는 영찬이 놀란다.
경숙이 보는데 법원 집행관들이 가구에 차압 딱지를 붙인다.
영찬, 경숙을 본다.
경숙: 내가 수감된 사이에 수원공장도 넘어가더니 이젠 집까지 넘어가게 생겼구나...!
영찬: 집은 왜요?
경숙: (힘없이) 수원공장 투자대출금, 경매비 8천만 원... 모두 연체야...
영찬, 집이 풍비박산 나는 걸 실감한다.
#113. 집 (밤)
몸져 누워있던 경숙이 전화를 받다가 벌떡 일어난다.
영찬이 곁에서 듣고 있다.
경숙: 뭐라고요? 여보!
김 교수의 전화이다.
#114. 전주 아파트
정순이 쳐다보는데 김 교수가 전화를 하고 있다.
수남: 아무래도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소. 나도 오랜 시간 고민한 결론이요. 그 집은 당신 소유로 할 테니 그리 알아요. 곧 등기로 서류를 보낼 테니 반송 부탁하오.
#115. 경숙의 방
멍한 얼굴의 경숙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영찬이 이내 울상이 된다.
경숙은 깊은 절망에 빠진다.
#116. 동부간선도로
알거지가 된 경숙과 영찬이 작은 용달차에 간소한 짐을 꾸려 이사를 간다.
#117. 달동네
산동네 길을 돌아 용달차가 힘들게 올라온다.
#118. 쪽방 안 (밤)
이삿짐 정리를 마친 경숙이 아들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다. 엄마가 없더라도 힘 모아 잘 살기를 바란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귀에 눈물이 떨어져 번진다.
#119. 방 안 (아침)
편지를 읽는 영찬이 눈물을 흘린다.
#120. 박정배 검사의 방
경숙은 검찰의 항소 사건을 맡은 박정배 검사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한다.
경숙: 검사님, 저는 무고로 석 달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입니다.
박 검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선숙 씨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재판이 힘들어요.
냉정할 뿐이다.
#121. 요준산업 사장실
영찬과 미란이 김융자의 아들인 박흥철 사장을 만나고 있다.
영찬: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주십시오.
흥철: 내게 말해봤자 필요 없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들어는 봤나?
곁에서 보던 미란이 기가 막힌다.
미란: 이보세요. 돈이면 다예요?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은 안중에도 없는 거예요?
흥철: (가소롭다) 응? 허허...
미란의 말은 씨도 먹히지 않는다.
영찬, 세상의 벽 역시 넘기에는 너무도 높음을 실감한다.
#122. 한선숙의 서초동 집
경숙과 영찬이 한선숙의 집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다.
한선숙이 외출을 하려는 듯 집을 나선다.
그녀를 쫓아가는 두 사람.
#123. 거리
한선숙 앞에 나타나는 영찬. 선숙이 놀라 뒷걸음치는데 경숙이 버티고 있다. 도망치려는 선숙을 영찬이 붙잡는다.
#124. 서초경찰서
선숙이 풀 죽어 있고 놀란 경찰이 전화를 하고 있다.
경찰: 네, 잘 알겠습니다.
경숙: 뭐랍니까?
경찰: 박정배 검사실로 인계하랍니다. 저희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경숙, 반신반의하며 걱정스럽다.
#125. 박정배 검사실 (다음 날)
박 검사 앞에서 경숙이 아연실색한다.
경숙: 아니 한선숙이 없어서 재판이 안된다더니 풀어주다니요?
경숙은 평등원칙이 무너짐을 실감한다. 영찬이 경숙을 부축한다.
박 검사: 저희 형사1부에서 공동 상의한 결과입니다.
경숙: 그럼 형사1부장에게 따지란 말입니까?
박 검사: 정 못믿겠다면 그러시든가요.
경숙이 영찬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다.
박 검사 나가는 걸 보더니 바로 전화를 건다.
#126. 1부장 방
1부장을 만났으나 답은 똑 같다.
1부장: 저희 형사1부에서 공동 상의한 결과입니다.
영찬: 어머니, 이만 가세요.
경숙은 자신을 말리기만 하는 아들이 야속하다.
#127. 복도
화가 난 경숙이 영찬에게 비수같은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다.
경숙: 너 봤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어?
영찬: ...
경숙: 젊은 놈이 그렇게 목숨이 아까워? 너 지금 올라가서 검찰총장 데리고 내려와! 차라리 네가 이 자리에서 엄마를 위해 자결할 수는 없니? 비겁한 자식! 나보고 참으라고?
영찬이 쇼크를 받는다. 화가 난 어머니의 말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비수 같은 말이다.
#128. 한선숙의 집
홀로 찾아온 경숙이 선숙의 며느리와 인터폰 통화를 한다.
며느리: (인터폰 소리) 저희 어머닌 오늘 미국으로 출국하셨어요.
경숙: (혼잣소리로) 도망쳤어!
망연자실한다.
#129. 정변호사 사무실
경숙이 한선숙과 김융자에 대해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사무장과 이야기를 하는 경숙.
사무장: 아시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경숙: 내가 입은 가정 파탄과 금전적, 정신적 피해보상을 청구한 거예요.
#130. 최 검사실
김융자가 소환되었고 경숙과 나란히 앉아 있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김융자는 당당하다. 권력에 대한 믿음일까? 허세일까?
경숙: 김융자, 권력은 화톳불 같은 거야! 어디 너두 구치소에서 백일만 지내봐.!
융자: (지지 않는다) 뭐라구?
최 검사: (소리친다.) 조용히 하세요. 김융자 씨, 박경숙 씨! 두 분 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꼼짝 말고 있어요. 알겠습니까?
최 검사가 자리를 비운다.
경숙은 다시 불안해졌다. 그때 환청처럼 방장의 말이 들린다.
방장: (소리) 이런 곳에 오지 않는 방법은 이빽 저빽 필요 없어. 도빽이 제일이야.
경숙은 다시 구속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131. 감옥 여사 (비전)
한 방에 갇힌 경숙과 융자. 눈싸움과 기싸움이 치열하다. 드디어 거친 몸싸움이 시작된다.
#132. 최 검사실
경숙이 슬며시 일어난다.
융자가 쳐다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곳을 빠져나오는 경숙.
#133. 길가
뜀박질을 하는 경숙. 구두를 벗어 들고 마구 달린다.
택시도 잡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그녀이다.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택시를 잡아타는 경숙.
#134. 광화문 앞
택시를 타고 가다 보니 어느덧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경숙: 휴~!
웅크린 채 한숨을 내쉰다.
#135. 쪽방
이불을 둘러쓰고 웅크린 경숙. 혹시나 자신을 붙잡으러 오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136. 사방 몽타주 (비전)
처음 사방을 가던 날의 기억.
벌거벗은 채 젊은 교도관에게 당하는 수모, 철창 사이를 걷는 경숙.
양쪽 사방의 사람들이 보내는 야유, 동물적인 울림이 온 몸을 휘감는다.
귀신같이 노려보는 방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경숙을 졸도시킨다.
경숙,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137. 쪽방
경숙이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 잔인한 트라우마이다.
그때 누군가가 이불을 걷어버린다.
보니 영찬이다.
영찬: (놀라) 왜 그러세요?
경숙: 아니야...
영찬: 김융자 씨 구속됐대요.
경숙: 그래? 나는 ...?
영찬: 엄마가 왜요?
경숙: 아니...
#138. 쪽방
한숨 돌리고 전화를 받고 있는 경숙.
영찬이 곁에서 듣고 있다.
경숙: 김융자가 일주일 만에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왔다네.
절망스럽다.
경숙: 여기서 끝낼 수는 없는 일이야.
영찬의 절망도 더욱 깊어진다.
#139. 쪽방 (다음 날)
김 교수가 찾아왔다.
수남: 회신을 보내주지 않아 왔어.
경숙: 알았어요.
경숙,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경숙: 부인보다도 다른 여자의 말에 현혹돼 제 부인을 버리고자 하는 이랑 나도 더 살 마음 없어.
수남: 영찬에게 얘기 듣지 못했어? 나 이미 다른 여자랑 동거하고 있어.
이젠 단란했던 가족이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영찬도 듣다가 울고 만다.
경숙은 수남이 꺼내 놓은 서류에 망설임 없이 도장을 찍는다.
#140. 카페 (밤)
비 내리는 날, 대취한 영찬이 미란과 결별을 통보한다.
영찬: 나는 인생의 실패자야. 좋은 곳에 시집가서 잘 살아.
미란: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왜 그래 갑자기!
영찬: 잘 살어, 나쁜 알바 하지 말고...
미란: 내 걱정 말고 너나 잘해!
영찬, 몸을 가누지 못한다.
#141. 정거장
경찬이 버스에 오른다. 그도 울고 있다.
고스란히 비 맞으며 울고 있는 미란.
미란은 느닷없는 영찬의 이별 통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미란: 바보 같은 자식...!
#142. 쪽방
경숙이 전화를 받는다.
전화소리: 여기 충주 내사파출소인데요, 김영찬 씨 집이 맞습니까?
불길한 예감이다.
#143. 버스
경숙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경숙: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경숙, 그저 아니기 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144. 쪽방 (회상)
경숙이 급속한 복통에 영찬을 불렀다.
경숙: 난 지금까지 살면서 이혼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너희 아버지가 보여준 비인간적인 태도는 정말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어. 너만은 엄마 편인 줄 알았는데...
영찬, 묵묵히 듣고 있다.
경숙: 왜 엄마한테 전주에서의 일, 얘기 안 해주었니?
영찬: ...
경숙: 나를 이렇게 만든 그 년들! 네가 내 대신 복수해줘!! 엄마를 이토록 파멸시킨 그 년 놈들 말이야!! 내가 죽어서도 절대 용서 못해!!
절규를 한다.
영찬,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145. 응급실 복도
복통을 호소하던 경숙이 응급카트에 실려간다.
#146. 상담실
영찬이 전문의와 마주 앉았다.
전문의, MRI를 보며 설명을 한다.
전문의: 어머니는 대장암 같습니다. 아직은 초기인데 수술을 해야 합니다.
영찬, 한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진다.
#147. 교회
영찬이 잘못을 회개하고 있다.
영찬: 하느님, 어머니를 부디 구해주세요.
한없이 나약해진 그이다.
#148. 쪽방
영찬, 눈물자국이 난 종이에 원망과 회한의 글을 써본다.
영찬: 그들을 용서하세요, 어머니...
겹쳐지는 눈물 자욱들...
#149. 면회소
군대에 있는 동생을 면회하고 있는 영찬.
영찬: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 암 초기니까 수술하면 괜찮으실 거야.
영진: (미국을 간다는 줄 알고) 아무 걱정 말고 잘 다녀와.
#150. 인서트
칸나의 붉은 꽃잎이 떨어진다. 영찬은 그렇게 떠났다.
#151. 충주호 강가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찬의 시체가 확인되었다.
경숙: 영찬아! 엄마 두고 웬일이니?
경숙은 울다가 까무러친다.
#152. 화장터
시뻘건 불길 속에 아들의 사체를 떠나보내는 경숙.
경숙: 내가 죽어야 하는데... 왜 네가 먼저 가니....!
정신을 잃는다.
영진이 경숙을 안아준다.
수남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153. 서교동 김융자의 집 앞 (밤)
비 내리는 칠흑 같은 밤이다.
높은 담장의 대문을 누군가 두드리고 있다.
온몸이 젖어 울부짖는 경숙이다.
경숙: 내 아들을 살려 내! 내 아들을 살려 내! ...!!
개만이 짖어대고 있다.
경찰차가 와서 그녀를 태우고 그 집 앞을 빠져나간다.
난공불락의 성이다.
#154. 수술실
의료진이 수술 준비를 마친다.
수술을 받는 경숙.
마취 상태에서도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집도의, 최선을 다한다.
#155. 충주호 강가
초가을 어느 날, 경숙과 미란, 영진이 그 강가에 와 섰다.
강물은 넘실거리며 말이 없다.
#156. 나룻배
일행이 함께 탔다.
경숙이 들국화를 한 잎 두 잎 강물에 뿌린다.
경숙: 영찬아, 엄마를 용서해다오. 네 마음을 그렇게도 헤아리지 못했던 못난 엄마를...
강물에 영찬이 떠오르고 웃는 얼굴이 보인다.
영찬: 어머니 웃으세요. 힘내세요. 착한 영진이가 상처받지 않게 어머니는 꼭 일어나셔야 되요. 어머니, 정말 사랑해요.
경숙: 영찬아! 잘 가...!!
입술을 깨물며 슬픔을 삭이고 있다.
#157. 교회
오늘도 경숙이 기도를 드린다. 그 옆에는 미란이 앉아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경숙은 몸서리를 친다.
#158. 교회 밖
나오는 경숙 일행.
미란이 어머니의 손을 잡아준다.
경숙: 인간은 용서해도 잘못된 법은 용서 못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법조문에도 없는 ‘현실적 법’과 국민들을 살해 시키는 이 제도와 내 조국의 법령이 정의로워질 때까지 난 싸우고 또 싸울 거야.
미란: 네, 어머니.
경숙: 고맙다.
모두 각오를 다진다.
#159. 실제 사진
여러 관련 사진들이 소개되며 자막이 떠오른다.
자막:
박경숙은 한선숙과 김융자를 무고죄로 고소했으나 2년이 다 되어서야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박경숙과 안왕의는 무죄 확정 후 민사소송 결과 안왕의에게는 1500만 원의 정신보상금과 빼앗긴 임야 3,000평을, 그리고 박경숙에게는 2,000만 원의 보상금 지급 판결이 내려졌다. 한 가정을 파탄 내고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보상금치고는 터무니 없는 판결이었다.
<사법제자리찾기> 모임의 초대 회장. 이것이 박경숙의 시민단체 활동의 첫 행보였고 오늘도 법정으로 간다. 그녀는 무고를 양산하는 법정에 맨몸으로 부딪치며 사법개혁의 의지를 자신의 소명으로 받고 오늘도 매진하고 있다.
엔딩 크레딧 타이틀이 소개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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