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사르트르 저, 오세곤 역
사양: 신국판 / 328쪽
정가: 16,000원
출간일: 2020년 5월 20일
ISBN: 978-89-5786-733-4 03860
「더러운 손」은 사르트르가 1948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 해 4월 2일 파리 앙트완 극장에서 시몬 바리오 연출로 초연되었다. 사르트르 하면 우선 실존주의를 떠올린다. 실존은 본질과 달리 불규칙하고 무질서하고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그 선택에는 당연히 책임도 따를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엄,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 사회적 책임, 행동 등을 중시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유용한지 무용한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아무리 애를 써도 무질서한 세계를 질서 있는 것으로 바꿀 수 없다는 무용론에 가까운 듯하다. 그럼에도 사르트르는 우리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선택하고 참여하고 행동할 것을 종용한다.
사르트르가 보는 세상은 비논리적이다. 즉 이오네스코나 베케트가 본 세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오네스코나 베케트의 소위 부조리극이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식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는 건 철저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는 데 반해 사르트르는 끝까지 선택하고 행동하고 노력하라는 분명한 메시지 내지 교훈을 던지고 있다.
그러므로 「더러운 손」의 주인공 위고가 마지막으로 외치는 “재생 불가”는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인간의 존엄 그 자체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불평등을 견딜 수 없던 위고는 집안과 결별하고 공산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부잣집 도련님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신문 편집 일밖에는 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행동대원을 자청한다. 그래서 맡은 임무는 서기장 외드레르의 비서로 위장 잠입하여 그를 암살하는 것이다. 그가 파시스트 독재 정권과 보수 정당 등 이념이 전혀 다른 정파들과 손을 잡으려는 불순한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고는 외드레르에게 인간적으로 끌리게 되고 그래서 결행이 자꾸 늦춰진다. 그러다 예의 협상 자리에 서기로 배석한 위고는 협상이 마무리되는 순간 자신의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일어나 격렬하게 반대한다. 아마 그간 미뤘던 암살을 실행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 밖에서 폭발물을 투척한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지만 위고는 그것이 자기를 못 믿은 동료들의 소행이라는 걸 느끼면서 절망한다.
이후 위고는 외드레르에게 설득당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바로 “더러운 손”이다. 즉 세상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그러므로 깨끗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더러운 현실에 손을 담가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암살 임무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인간적 존엄을 존중해 주는 외드레르에게 감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위고의 부인 제시카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고 결국 위고는 외드레르를 저격하고 만다.
살인의 원인이 치정이었는지 정치였는지 불분명한 가운데 위고는 수감 생활을 끝내고 출소한다. 그러나 그에게 암살 지령을 내렸던 옛 동료들은 그를 죽이려 한다. 앞서 외드레르가 시도했던 타협을 그들 스스로 똑같이 행했기 때문에 위고는 이제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다행히 늘 그를 옹호해 주었던 올가가 나서서 당원으로서 재생 가능한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로 시간을 얻는다. 암살에 대한 의지가 분명했다면 위험한 인물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시 평범한 행동대원으로 임무를 맡겨도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긴 얘기가 시작된다. 그걸 들으며 암살에 대한 의지가 약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올가는 오히려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고 믿으면서 안심한다. 하지만 세상이 외드레르가 예견한 그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위고는 그의 죽음을 그렇게 하찮은 것으로 방치할 수 없다. 결국 위고는 자신은 “아직 외드레르를 죽이지 않았지만, 이제 정말로 죽이겠다.”고 외친다. 밖에서 사살조가 대기하는 가운데 자신의 자유의지로 “재생 불가”를 선언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차례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제6막
제7막
저자소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사르트르는 파리에서 태어나 1929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1-46년에는 교사 생활을 하였다. 학창시절 결합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와 평생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으며, 전쟁 중인 1939년 징집되어 1940년 포로가 되었다가 1년 만에 석방된다. 교사 시절 발표한 일기체 소설 「구토」(La Nausée, 1938)로 첫 명성을 얻은 뒤 여러 편의 철학적 작품들을 집필하는데 그 중 대표는 “인간 의식 또는 비사물성(néant, 無)을 존재, 즉 객관적 사물성(être, 存在)과 대비시킨”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옹호한 그는 종전 후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려 소설과 희곡으로 윤리적 메시지를 전한다. “자유의지와 선택, 그리고 행동”이란 주제는 「파리떼」(Les Mouches, 1943), 「닫힌 방」(Huis-clos, 1944), 「더러운 손」(Les Mains sales, 1948), 「악마와 선신」(Le Diable et le bon dieu, 1951) 등 희곡은 물론 그가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에 대해 쓴 「성(聖) 주네, 희극배우와 순교자」(Saint Genet, comédien et martyr, 1952)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정치적으로는 분명 좌파였으나 화석화한 현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공산주의는 다른 구체적 실존상황을 인정하는 법과 인간의 개인적 자유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1964년 자전적 소설 「말」(Les Mots, 1963)이 노벨상을 받게 되지만 수상을 거부한다.
오세곤
오세곤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여 현대희곡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배우의 화술』, 『예술강국, 문화대국』, 『연기화술클리닉』 등의 저서와 여러 권의 고등학교 연극 교과서를 집필하였으며, 손턴 와일더의 「우리읍내」,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과 시집 「사형수」,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수업」, 「의자」, 「왕은 죽어가다」, 「살인놀이」, 장 아누이의 「반바지」, 스트린드베리의 「줄리아씨」, 하벨의 「청중」,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 베케트의 「승부의 종말」 등 여러 작품을 번역하였고, <우리읍내>, <체홉의 수다>, <술로먼의 재판>, <갈매기>, <타이터스>, <보이첵>, <오 행복한 날들>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1996년 가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1999년 순천향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현재 연극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8년 한국연극교육학회 회장과 2005-12년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5년 한국연극교육학회 산하 분과학회로 한국화술학회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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